기업형 중고 서점이 출판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 최근 결이 다른 헌책방 ‘서울책보고’가 문을 열었다.

문제 하나: 영화 <해피 엔드>(1999), <범죄의 재구성>(2004), <달려라 자전거>(2008)의 공통점은? 상처 입은 ‘찌질한’ 가장의 복수극을 그린 영화와 치밀한 두뇌 게임 영화, 그리고 청순 아련한 첫사랑의 이야기에 무슨 공통점이 있을까. 그런데 있다. 답은 ‘헌책방’이다. 세 편의 영화에는 사건의 배경 혹은 영화적 장치로 헌책방이 등장한다. 실업자 주인공의 추레한 일상을 보여주기 위하여, 타인의 눈을 피해 벌어지는 어두운 범죄의 현장으로, 외롭고 쓸쓸한 주인공의 내면을 그려내기 위하여. 그렇다. 헌책방은 그런 곳이다. 어쩐지 고독하고 내성적인 이들이 와서 먼지 쌓인 책의 어두컴컴한 숲에 앉아 상처를 보듬는 치유의 공간 같다. 퉁명스럽지만 마음은 따뜻한 주인이 돋보기 너머로 말 상대라도 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다.

그러나 우리 모두 슬퍼하자. 이제 그런 헌책방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래도록 찾던 책을 우연히 마주치는 기쁨도, 낡은 속표지에 유명 저자가 적어놓은 서명을 발견하는 신기함도, 전 주인이 책갈피에 숨겨놓은 지폐 몇 장을 횡재하는 즐거움도 추억 속으로 물러났다. 사라진 헌책방의 맞은편에는 말끔한 중고 서점이 들어서 있다. 쾌적한 공간, 깔끔한 서가에 한쪽에는 고급스러운 카페까지 갖춘, 이른바 ‘기업형 중고 서점’이다. 이곳은 진열된 책마저 다르다. 베스트셀러를 흔히 만날 수 있고, ‘헌책’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신간과 다름없는 중고 도서가 꽂혀 있다. 그러니 우리는 엄밀하게 구분해야 한다. 기업형 중고 서점은 더 이상 ‘헌책방’이 아니다. 그곳은 절판 도서도, 손때 묻은 시간도, 주인장의 심드렁한 간섭도 없는, 때깔 좋은 상품의 백화점일 뿐이다.

기업형 중고 서점이 출판과 독서 생태계를 해치고 있다는 말이 나온 지는 제법 오래되었다. 요술 램프 그림을 붙인 유명 중고 서점은 1호점 이후 8년 동안 전국에 43개의 지점을 열었고, 또 다른 대형 온라인 서점도 이 블루오션에서 오프라인 중고 서점을 늘려가고 있다. 수익성이 낮다면 그럴 리가 없다. 영업은 활황이다. 그뿐이 아니다. 중고 서점을 운영하는 이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검색하면, 화면 한쪽에 똑같은 책의 중고 책이 버젓이 붙어 있다. 나온 지 한 달도 안 된 신간인데!

중고 서점에서 판매하는 ‘신간 같은’ 중고 도서가 단순히 신간과 경쟁하기 때문에 출판 생태계를 해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한 일간지 기자가 기업형 중고 서점의 문제점을 확인하기 위해 몸소 책을 사고팔았다(<한국일보> 1월 25일 자 ‘창작 새싹 밟는 기업형 중고 서점, 이대로 좋은가’). 그가 온라인에서 구입한 1만800원짜리 신간을 중고 서점에서는 6,000원에 매입했고, 다시 8,400원에 되팔았단다. 서점이 그 책을 신간으로 팔고 다시 중고 책으로 팔아서 얻은 마진은 약 7,000원. 정가 1만800원의 책에서 무려 7,000원의 수익을 취했다. 같은 책으로 저자가 받는 인세가 1,200원이고 출판사의 순익도 비슷한 수준이라는 것을 밝혀두자.

기업형 중고 서점이 출판 생태계를 해친다는 말의 뜻은 두 가지다. 첫째로, 중고 책이 많이 팔리면 팔릴수록 신간 판매가 위축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신간이 나오자마자 중고 시장으로 빠르게 흡수되면서 중고가 신간을 대체하는 교란 행위가 벌어진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조사로는 중고 도서로 인한 신간 판매의 기회 손실이 7.6%라고 한다. 바보 같은 상황이다. 이런 식으로 차츰 신간이 줄어들면 그때는 무슨 책으로 중고 도서를 팔까? 눈앞의 이익을 위해 중고 서점은 자기들 이익의 원천인 신간을 매일처럼 죽이고 있다.

둘째는 상도덕의 문제다. 중고 책을 사고파는 행위는 비도덕적일 뿐만 아니라 심지어 범죄 요소까지 있다. 왜냐하면 독자가 중고 서점에 책을 팔고 서점이 책을 되파는 과정에서 그 책의 생산자인 저자와 출판사는 철저히 배제되어 있으니까. 책의 핵심을 구성하는 것은 콘텐츠, 즉 지적 재산권이다. 저자와 출판사는 피땀 흘려 만든 콘텐츠를 시장에 내놓고 그 대가로 인세와 수익을 얻는다. 그러나 생산자도 아닌 유통과 소비 주체가 이 지적 재산권을 거래하면서 이익을 편취한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책의 콘텐츠가 비록 종이책에 담겨 있을지언정 물질적 소유물이 아닌 무형적인 재화이기 때문이다. 이 무형적 특징 때문에 사람들은 종이책 한 권을 산 것으로 지적 재산권을 통째로 구입한 것처럼 오해한다. 이렇게 중고 책을 사고파는 과정에서 저자에게 한 푼의 인세도 돌아가지 않는 건 물론이다. 도서관에서조차 책 대출과 이용에 따른 저작권 침해 문제로 공공 저작권료(인세) 지불을 검토하고 있는데 말이다.

이런 문제의 발원지가 독자보다는 중고 서점에 있다는 건 분명하다. 기업형 중고 서점은 독자가 새 책을 사자마자 “빨리 읽고 헌책으로 파세요. 비싸게 사줄게요”라고 독려하는 수익 모델이다. 깊이 생각할 의무가 없는 독자는 내 돈 주고 산 책 되파는 데 무슨 윤리적 죄의식을 가져야 하는지 모른다. 최근 출판계와 기업형 중고 서점은 6개월 이내의 신간은 중고 도서로 팔지 않기로 의견을 모았지만 아직도 이런 서점에서는 최근에 나온 신간을 볼 수 있다. 출판계는 18개월 이내 신간을 판매 금지하자고 요구하는 중이다.

기업형 중고 서점으로 이미 내상을 입은 출판계와 저작자들은 최근 초대형 헌책방이 문을 연다는 소식에 화들짝 놀랐다. 서울시가 잠실나루역 인근 시유지에 오픈한 헌책방 ‘서울책보고’ 때문이다. 시민들의 독서 함양과 영세 헌책방을 살리겠다는 선의가 또 함부로 던지는 돌멩이가 되어 애먼 개구리를 죽이진 않을까? 독자 몇 명 더 늘린다는 명분 말고는 어떤 헌책방도 출판계에 도움이 될 리 없기 때문이다.

무거운 마음을 안고 오픈 일주일 후 ‘서울책보고’를 방문했다. 과연 모든 매체가 앞다퉈 오픈 소식을 알릴 만했다. 1,465m²(약 450평)의 너른 공간과 12만 권의 진열 도서, 멋진 내부 디자인에다 전시와 편의 공간까지 시민들을 유혹하기에 충분했다. 유명한 공씨책방을 비롯해 글벗서점, 동아서점 등 오래된 헌책방 25개가 입점해 있었고, 저마다 아치형 철제 서가를 배정받아 책을 진열하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서울책보고는 그것을 기업형, 공공형 뭐라 부르든 엄격히 말해서 또 하나의 ‘대형 중고 서점’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서울책보고를 오픈하기까지의 전체 기획과 운영을 책임진 서울도서관 이정수 관장에게 전화를 돌렸다. 궁금한 점, 걱정되는 점을 꼬치꼬치 캐물었다. 서울시는 이 헌책방의 공공적 성격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시가 나서서 수익을 취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고, 모든 책 판매 대금은 10%의 수수료만 운영비 명목으로 떼고 전액 입점 업체에 돌아간단다. 오픈 후 처음 맞은 주말에만 1만2,000권이 판매되는 바람에 입점한 헌책방 모두가 입이 함박만 해졌단다. 독자들은 독자들대로 비싸야 4,000원 정도인 책값에 만족하고, 무엇보다 진짜 구하기 힘든 헌책을 만날 수 있는 것에 기뻐한단다.

하지만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었다. 이런 헌책방을 더 만들 계획이 있느냐는 우려 섞인 질문에 이정수 관장은 답했다. “헌책방의 의도가 아무리 좋아도 이런 책방이 늘어나서 출판계와 기존 서점에 득 될 게 없다는 건 잘 알아요. 저희 의도는 시민들의 책 읽기 기회를 늘리는 데 있지 헌책을 파는 것 자체에 있지는 않으니까요.” 그러면서 이 관장은 덧붙였다. “무늬만 중고인 가짜 중고 도서보다는 양질의 도서나 구하기 힘든 헌책을 팔아야 하는데, 헌책 매입도 기업형 중고 서점에 밀려서 쉽지 않아요.” 그래서 서울시와 도서관 측은 헌책방을 더 늘리기보다 동네 서점 살리기 쪽으로 관심을 돌리는 중이란다. 임대료를 지원하거나 제로페이로 신용카드 수수료 부담을 덜거나 하는 식의 종합 대책을 고민하고 있단다. 설명을 듣고 약간 안심이 되었다. 동네 서점이 망해가는 것은 독자가 줄어서만은 아니니까. 하루에 고작 몇십 권 팔리는 책으로 임대료를 대기가 힘들어 문을 닫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서울책보고는 기존의 기업형 중고 서점과는 설립 목적이나 영업 방식이 전혀 달라서 출판계에서도 전혀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모양이다. 그럼에도 눈에 띄는 문제는 여전히 있었다. 도서 검색대가 따로 설치되어 있지만, 전혀 분류되어 있지 않아서 필요한 책을 찾기가 어려웠다. 예전 헌책방의 고질적 문제를 그대로 옮겨왔다고 할까. 헌책만이 아닌 새 책을 시민들에게 알리는 노력도 더 필요해 보였다. 가령 도서관 사서들이나 공공 기관이 추천하는 신간 도서만큼은 따로 진열해 소형 서점에 팔게 하면 어떨까?

헌책방은 헌책방다워야 한다. 독자의 책장에서 오래도록 읽히다가 이제는 수명이 다한 책이 또 다른 독자의 손에 들어가 다시 한번 귀하게 읽히는 ‘책의 보물 창고’가 되어야 한다. 서울책보고를 나오는 길에 나는 예전에 읽으려다 놓친 책 두 권을 구입했다. 어떤 책이냐고? 영장류 학자 제인 구달 선생과 몇 저자가 함께 쓴 <희망의 밥상> 그리고 <에드워드 사이드 자서전>이다. 두 권 다 나온 지 10년이 훌쩍 넘었고, 이 두툼한 책을 합쳐 7,000원에 ‘득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