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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기
  • 제2기
  • 제3기

1945년 해방 이후 한국 도서정가제의 역사를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이를 위하여 우선 시기를 크게 셋으로 나누었다. 즉, 도서정가제가 전국적으로 실시되었던 1977년 12월 1일과 법제화되었던 2002년 8월 26일을 기점으로 삼아, 제1기는 1945년 해방 이후부터 1977년 11월까지, 제2기는 1977년 12월부터 2002년 8월 도서정가제 법제화 이전까지, 제3기는 도서정가제 법제화 이후부터 현재까지로 잡은 것이다. 이와 같은 시기구분의 기준은 정가제를 통한 도서유통질서의 확립과 출판문화의 발전에서 찾았다.

제1기

  • 6.25전쟁과 덤핑서적시장의 형성

    특이하게도 해방 직후 우리의 출판시장은 수개월간 ‘판매자 시장’을 형성할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1946년 가을 이후부터는 경기 침체와 심각한 용지난으로 인하여 서적판매 시장은 극심한 어려움을 겪었고 도서유통 질서도 문란해지기 시작했다. 또한 당시는 수송체계도 원활하지 못하여 지방에서는 도서의 정가를 인상하여 팔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도서유통의 질서가 무너지고 할인율 문제, 도서 정가의 문제가 크게 악화된 것은 6.25전쟁을 겪고부터였다.

    전쟁 이후 서점과의 거래는 더욱 악화되고, 책값 회수도 극히 불량하였다. 6.25전쟁 직후에는 출판계에 어음제도가 생겼는데, 기일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부도사태가 일어나고 혼란이 커졌다. 이 판매문제와 대금 회수 문제는 출판계의 현안으로 대두되어 출판인들은 누차 회의를 갖고 대책을 논의했으나 큰 성과는 없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많은 출판인들은 부채에 쪼들리게 되어 책을 헐값으로 투매하는 현상이 생기게 되었다. 이때부터 서울의 동대문시장에는 노점서적상들이 번창하기 시작하였다. 소매상은 할인판매로 살 길을 찾고 도매상은 속속 문을 닫게 되고 출판업자는 덤핑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어 서울 동대문시장에는 덤핑서적시장이 형성되었다.

    1960년대 초반 서적덤핑상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는 가운데 도서정가제 운동이 전국서적상연합회(현 한국서점조합연합회, 이하 한국서련)를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마침 정가제를 강조하는 정부시책에 맞추어 출판사와 서적상들이 일치해서 도서정가제를 시도하였다. 이 무렵 정부에서는 도서정가제의 관철 의지를 강력하게 천명하였고, 그런 방침에 따라 정부는 출판사로부터 부당한 정가를 기재하여 할인판매를 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당국의 강경한 입장과 출판ㆍ서점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할인판매 행위가 뿌리 깊게 보편화되었기 때문에 도서정가제는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더욱이 당시의 사회경제적 상황은 전반적인 출판시장을 위축시켰기 때문에 더욱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한편 출판계는 1950년대 후반까지도 계속되는 불황과 판매대금 미회수 및 서점과의 거래 악화로 심각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마침내 1958년 출판계에서는 이러한 심각한 상황을 출판계 스스로 탈피하고자 하는 새로운 시도가 이루어졌다. 즉, 대형 기획물의 발간과 방문판매 방식을 찾아낸 것이다. 이러한 외판 방식은 60년대에도 계속 발전해 나가 출판산업의 활로 개척에 나름의 성과를 거두기도 하지만, 서점의 발전과 도서정가제의 시행에는 걸림돌로 작용했다. 이런 가운데 1960년대 후반에 서점은 영세화하고 위축되어 문을 닫는 곳이 많아졌다.

  • 모델 서점의 설립과 도서정가제 실시 준비

    1960년대 후반 제1차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통해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도서 판매시장도 조금씩이나마 매년 상승하기 시작했다.그러나, 서점은 발전하지 못하고 쇠퇴를 거듭해갔고, 서점계의 판매질서나 거래 상황도 나아지지 않았다. 이에 그 개선 방법으로 서적상계에서는 도서정가제의 실시를 연구 추진하였다. 동시에 도서유통 체계의 개선을 위한 효과적인 도서공급 기구를 설립하자는 논의도 잇따랐다. 이때 출판계에서는 출판금고 직영으로 모델서점을 전국적으로 설립하여 도서 일원화 공급기구의 기간조직으로 만들자는 계획이 나왔고, 그 일환으로 1972년 9월 서울에 중앙도서전시관을 설치하였다. 이 전시관에서는 전국적으로 만연된 고질적인 타성인 할인판매를 지양함으로써 서점운영에 새바람을 불어넣고자 하였는데 독자들의 호응을 얻어 판매량이 매해 늘어났고 참여하는 출판사의 수도 증가하였다. 중앙도서전시관에서의 이러한 정가판매제의 성공은 1970년대 후반에 확립된 도서 정가판매 제도의 밑거름으로 작용했다고 생각된다.

    70년대의 수출 증대에 따른 경제성장 및 도시화와 함께, 특히 한글세대의 등장은 새로운 독자층 형성에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또한 독자들의 수준도 높아져, 고가의 전집물 외판업계가 크게 위축된 반면에, 직접 서점을 찾아 직업과 관련된 실용서나 전문분야의 단행본을 찾는 수요가 늘어났다. 그리고 단행본 중에도 값이 비싼 호화 양장본보다는 염가의 실질적인 문고본 등에 독자들의 관심이 더 쏠리는 경향을 보여주었다.

    이에 따라 서점 경기도 좋아졌다. 그러나 유통질서는 여전히 문란했고 할인판매가 성행하였다. 심지어 가격의 덤핑은 물론 동일 종류의 도서를 선물로 주는 극단적인 판매방법까지 등장하였다. 이뿐만 아니라, 가격 책정 자체를 덤핑화하여 내놓은 염가본이 나오기도 하였다.

    그러나, 출판ㆍ서점계에서는 유통질서의 확립을 위한 일차적인 과제로서 도서정가제의 실시를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는데, 도서정가제 실시의 걸림돌은 가격 책정이었다. 정가제가 결과적인 가격 인상이 되기 때문에 독자에게 피해가 갈 것이라는 언론과 국민들의 오해를 불식시킬 필요가 제기되었다. 이에 따라 서적상인들은 출판인들에게 지금까지 시장에 나와 있는 도서 가격을 조정(인하)해줄 것을 요청하여 민중서관, 동아출판사, 교학사, 시사영어사 등 상당수 출판사들로부터 협조를 이끌어내었다.

제2기

  • 도서정가제의 성공과 서점계의 활성화 및 출판 발전

    1977년 12월 1일을 기하여 정가판매제를 실시하였는데, 기대 이상으로 규칙을 어기는 곳이 거의 없이 성공을 거두었다. 그때를 기하여 각지의 모든 서점은 협동만이 살길이란 산 교훈을 터득하였다고 한다. 서점업계는 이제 단합과 협동을 통하여 판매질서가 확립되고 상도의가 세워졌다. 정가제 실시 이전 고객뺏기 경쟁에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대립하던 때에 비하면, 일신한 분위기가 완연했다.

    정가제 실시는 서점들이 자구책으로 실시했던 제도인데, 독서문화와 서점계에 다음과 같은 영향을 끼쳤다.

    첫째, 독자들에게 책에 대한 권위를 새로 인식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둘째, 서점 경영주들에게 의욕을 불러일으켜 경영자세의 개선과 운영의 합리화를 이루게 하였다. 셋째, 서울의 일부 지역과 지방도시에서 판을 치던 덤핑 서적들이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 도서정가제의 성공이 갖는 의미는 서점의 적정 마진 확보로 인한 재무구조의 호전과 운영의 원활, 출판사에 대한 거래조건 개선 등에 의한 출판사 자금회전 기간 단축과 대손(貸損)의 감소, 이들 거래의 활성화와 경영합리화에 따른 독자 서비스 증대, 도서유통의 어려운 문제들을 풀어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되는 점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그런데, 한국에서 도서정가제의 성공은 그 과정이 외국의 경우와도 달랐다. 영국이나 일본에서는 출판계가 주체가 되어 국가의 법적 보호를 받으면서 출판사, 서적도매기구, 서점조합의 3자가 협의기구를 조직, 진지하게 문제 하나하나를 풀어나간 협동적인 노력의 소산인 데 비해, 한국의 경우는 법의 보호나 협의기구도 없이 한국서련이 주축이 되어 이루어낸 것이 특기할 점이라 하겠다.

    도서정가제 실시 이후 서점계의 분위기가 바뀌고 거래질서가 개선되면서, 서점수의 증가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70년대 초에 줄기 시작했던 서점이 부가가치세 면세의 힘과 도서정가제 실시로 인하여 활기를 찾기 시작하여 주요 도시에서 크게 늘어났다.

    또한 서점수의 증가와 함께 서울의 종로서적과 교보문고 등을 비롯한 서점의 대형화 현상도 시작되었다. 도서정가제의 효과는 서점의 활동 영역을 확장시키는 것으로도 나타났다. 이제는 서점 자체에서 책의 홍보를 위한 행사를 벌이기 시작했다. 1981년 한국출판판매가 창립 20돌 기념으로 ‘서울북페어’를 연 것을 시작으로 교보문고, 종로서적, 중앙도서전시관 등에서 계속적으로 자체 행사를 벌여 독자들을 책방으로 끌어들이는데 기여하였다.

    도서정가제가 정착되어 가고 있을 무렵인 1980년 12월 31일 정부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하 공정거래법)을 제정ㆍ공포하였는데, 이는 도서정가판매제도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될 법률이었다. 공정거래법 제20조에서는 재판매가격유지행위를 금지하고 있는데, 다만 “대통령이 정하는 저작물에 대해서는 이를 적용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였다. 시행령 확정을 거쳐 1981년 4월 1일부터 발효된 이 공정거래법에 따라 출판물은 정가판매 허용상품으로 지정되어 정가를 표시할 수 있게 되었다.

    한편 도서정가제가 실시된 이후 도서 발행량도 비약적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신간 발행종수는 1977년 9090종에서 1978년 9813종으로 증가하고, 1979년 1만 1164종, 1980년 1만 3062종, 1981년 1만 3618종으로 계속 증가하여 1986년 2만 종을 넘어서게 되어 양적으로는 세계 10대 출판대국에 들어서게 되었다.

  • 흔들리는 도서정가제와 법제화 추진

    전체적인 서점수의 증가와 함께 전체 출판량과 판매량은 증가했지만, 개별 서점의 판매율 자체는 출판량의 증가에 비하여 그리 큰 진전이 없었다. 그런 중에 1983년 11월 초 일부 출판사가 서울시내 몇몇 대학의 축제기간중 학생단체를 통해 정가의 20~30%를 할인판매한 사건이 일어났다. 또한, 이 무렵 일부 변두리 서점과 지방서점에서는 도서의 할인판매 행위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또한 ’83년 말에는 도서정가의 10%에서 20%의 헐값으로 덤핑하거나 전집물에 다른 여러 가지 책을 얹어주는 ‘끼워팔기’를 자행한 16개 출판사에 대해 경제기획원 공정거래실이 경고 조치한 일도 있었다. 이러한 책값의 변칙 덤핑은 소매서점만이 아니라 일부 도매서점에서도 발생하여 재판매가격유지계약을 위반하는 사례도 있었다.

    그러나 전반적인 분위기는 도서정가제를 지키려고 노력하여 서점계 안에서는 도서정가제가 당연시되었다. 다만, 한국서련 회원이 아닌 문방구나 기타 매점에서 일부 서적과 정기간행물을 판매하면서 정가제를 어기는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어 문제가 되었다.

    1990년대 중반 한국 유통시장에는 이른바 ‘가격파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시장과 백화점, 슈퍼마켓 정도로 구분되던 국내 유통업계에 창고형 도매점, 할인점, 양판점 등 새로운 형태의 판매점이 급격히 팽창하면서 상품가격의 체계를 뒤흔들어놓은 것이다. 특히 유통시장의 전면 개방과 함께 외국의 가격파괴 업체가 한국시장으로 진입해 오면서 도서정가제를 위협하였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그동안 대형할인점 등에서만 도서 할인판매가 이루어지던 것이 이제는 서울 일부지역의 서점들까지 도서 할인판매 경쟁에 뛰어들게 되었다.

    도서의 할인판매는 특히 1997년 IMF 경제위기 이후 유통질서의 혼란으로 공공연하게 성행하였다. 1990년대 상반기에 전집이나 베스트셀러를 중심으로 편의점이나 대형 창고형 할인점에서 일어나던 가격파괴 현상이 1990년대 후반에는 학습참고서, 사전, 전집물, 단행본 등 출판물 전분야에 걸쳐 전국적으로 일어나게 되었다. 전영표, 앞의 자료, p.36. 또한, 1990년대 후반 이후 시장 규모가 계속 커진 인터넷서점에서는 가격 할인을 내세우며 도서정가제를 근간에서부터 흔들려 하였다.

    한편 1986년 이래 법적인 뒷받침을 받아 왔던 도서정가제의 시행을 축소 또는 폐지하려는 움직임이 공정거래위원회를 중심으로 한 정부 당국에서 끊임없이 터져 나옴에 따라 출판ㆍ서점계와 갈등을 빚게 되었다. 이는 단순한 자유시장 경제논리를 내세운 공정거래위원회측과 문화상품의 논리와 현실적 성과를 내세운 출판 서점계간의 갈등이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에, 도서정가제를 지키지 않는 일부 할인판매업체와 외국 도서유통업체의 도전을 받게 된 출판ㆍ서점계에서는 이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으로 도서정가제의 법제화를 시도하게 된다.

    우선 한국서련은 1999년 7월 ‘저작물의 정가유지에 관한 법률(안)'을 문화관광부에 제출했고, 이것을 여ㆍ야 의원 28명이 11월 22일 발의해 입법화가 추진됐다. 그러나 공정거래위원회가 여전히 반대하는 가운데 열린 1999년 12월 13일 문광위 소속 소위원회에서 법안 상정 유보를 결정함으로써 입법화는 무산되었다. 법안 상정을 위한 논의 과정에서 특히 문제가 된 부분은 인터넷서점의 할인판매 허용 여부였다. 일부 의원들이 무조건 할인판매를 금지할 경우 인터넷서점의 존립근거가 없어진다며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같은 해, 출판계 자체에서도 한국출판인회의를 통해 도서정가제의 당위성을 주장한 문건을 입법의 1차 자료로서 문화관광위원회 소속 의원들에게 전달했다.

제3기

  • 제3기는 도서정가제가 출판및인쇄진흥법에 포함되어 법제화가 이루어진 시기이다. 그러나 도서정가제 법률은 불완전한 형태로 제정ㆍ시행되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